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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일 수요일

[Travel-post] 4박 5일간의 이르쿠츠크 (D+11)


짧았지만 정든 횡단열차를 뒤로 하고 이르쿠츠크에 내렸다.
너무 늦은 시간에 내린 터라 이르쿠츠크에서 신세지기로 한 호스트 제냐 집에 너무 늦게 도착했고,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일찍 잠을 청했다. (호스트가 일을 다녔어서 너무 미안했다.)



어제 밤엔 어두워서 잘 보질 못했다.
그런데 왠걸 아침에 나와보니 눈이 장난이 아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도 눈은 많았었지만 여긴...아마 20센치 이상은 쌓여있는 듯 했고, 모든 지붕이나 차들이 걱정될 정도였다.

열차에서 늘어진 생활을 보냈어서였을까, 이르쿠츠크의 첫날은 아직 몸이 덜 풀린 듯했다.
뭐, 우린 시간이 많은 장기여행자니까.
하루는 제냐집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제냐 집은 이르쿠츠크 시내에서는 버스타고 한 30분 정도 떨어져있었지만
걸어서도 35분이면 충분했다. 
이르쿠츠크는 교통채증이 심했다. 신호등도 없는데 사람만 보면 멈춰서는 차들 덕에 천천히 걸으면 관람하기가 좋았고, 이르쿠츠크는 생각보다 작다.)

그냥 동네 구경인데도 너무나 예뻤다.
온 사방에 눈이 쌓여있고, 그 덕인지 모든 것이 느려보여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우린 크리스마스 전 날에 제냐 집에 도착을 했고, 다음날 눈을 뜨니 크리스마스인 상황.
그냥 보낼 순 없다.
우리를 맞아준 호스트 제냐에게 감사의 표시로 케잌을 사오고, 찜닭을 만들었다.
요리는 늘 하던 데로 UK께서 하시는 걸로..

그렇게 제냐를 기다리고 있는데 제냐가 선물 박스를 가져왔다.
이 선물 박스는 블라디보스톡의 로만네 집에서도 같이 먹은 박스라 보자마자 흥분상태였다.
이 박스는 안에 초코가 한가득 들었는데, 크리스마스 보다는 새해의 첫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러시아에서 근무자들 모두에게 주는 선물 박스 같은 것이다.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받아 온다.


이 박스의 구성품들..
정말... 러시아 좋은 나란가보다. 
이 간식은 밥을 먹고 먹는 걸로.


블라디보스톡에서 보단 매웠던 찜닭, 적는 지금 또 먹고 싶다. 매운 음식이 필요하다.
다행히 제냐는 매운 음식을 잘 먹는 듯 했고, 밥과 함께 다 먹어 치운 우린 디저트로 초코 케잌을 먹었다. 러시아에서 거의 대부분의 식사 대용 빵들은 밀도가 높아 단단하지만 디저트는 엄청 부드럽고 달다.


크리스마스 밤인데, 디저트로 끝낼 순 없지.
제냐의 소개로 함께 집 근처 맥주가게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게 있으면 좋겠다. 가격도 저렴하고 종류가 워낙 많아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데, PT병에 원하는 양만큼 담아 판다.
제냐 집에 있던 마른 생선안주와, 반건조 연어안주, 그리고 우리가 가져갔던 오물안주를 두고 먹는데. 아직 우린 짠맛에 길들여 지지 않았다.
손톱만큼의 안주로 맥주 한 컵 클리어.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남는게 시간.
오늘은 이르쿠츠크 인포메이션에 들렸다가 일정을 정하기로 했다.
인포가는 길도 너무 예뻐서 뚜벅.

인포에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안내책자를 볼 수 있는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조금 협소해 보이는 공간이지만 인적이 드물기에 그 공간마저 아늑하고 좋았다.

그리고 인포에는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는데, 다른데서 파는 것 보다 훨씬 비싸다.
현혹되지 말 것.


인포에서 얻어낸 차와 제냐의 선물박스에서 가져온 초콜렛을 먹으며 뚜벅.
(이 초콜렛 정말 맛있었다.)




뚜둔.
인포에서 쭉 걸어 올라 다리 하나를 건너가면 허허벌판에 카잔성당 건물 하나 우뚝나와있다. 멀리서도 보여 쉽게 찾아 갈 수 있는데, 난 개인적으로 이르쿠츠크에서 카잔 성당이 가장 인상깊었다.

사실, 실내에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조심 찍고 있으니 아무도 뭐라 하시지 않아 안도.
문 앞에 중국말로 뭐라 적혀 있는데 아마 떠들지 말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러시아에서는 많은 건물들이 붉은 색으로 되어 있는데, 붉은 색이 이렇게 이뻤나 싶을 정도다. 자연과도 그렇지만 어느것 하나 안 어우러지는게 없었다.
게다가 실내의 따뜻한 주황색은 바깥 날씨와 무관하게 아름다웠다.
사실 이르쿠츠크의 카잔 성당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절대 잊지 못 할 것 같다. 우리 나라의 성당과는 확연히 다르다.
예배당도 없고(미리 말하지만 난 종교 무식자다.) 화장실도 없다.
조용히 왔다가 초를 꽂고, 기도를 하면 그 뿐이다.







처음엔 카잔성당을 보고 중심가로 나가 밥을 먹을 예정이었다. (사람들이 싸고 맛있다고 올려놨던 파이집에) 하지만 성당 바로 앞엔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가격. 아니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의 케밥이 있어 고민없이 들어갔다.

케밥도 케밥이지만 커피 마져 싸다.
그런데 더 기분 좋았던 건, 가격에 비해 맛이 좋았다. 별 기대없이 들어가서 그랬을 수도,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러시아 식당에서 사 먹은 음식 중에 가장 안 짜고 맛있었던 끼니였다.

+ 앞으로도 나는 러시아에서 화장실가기를 많이 시도한다. 하지만 여행을 많이 가보지 못한 나에겐 화장실 가는데 왜 돈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 외출시엔 미리 화장실을 꼭 가는 부지런함을 장착하게 된다.



걸어걸어 중앙시장으로 가는데 길이 그냥 다 예쁘다.
곰손이라 아쉬울 다름이다.


원래 이런진 모르겠는데, 중앙시장은 기대와 달리 한산했다.


하/지/만
중앙시장을 지나 마주보는 큰 백화점을 오른쪽에 두고 골목으로 가면 이런 매대가 많다.
여기선 많이들 과일과 견과류를 파는데
과일은 냉동고에 있다 나온 것도 아닌데 꽝꽝 얼어있다.

+ 러시아에선 잣이 유명하다는데 지금 살까 나중에 살까 고민만 하다 어떤 아주머니 덕에 맛만 보고 일단 패스했다. (맛있었지만 많이들 먹는 해바라기씨에 비해 비싸다.)

해가 떨어지면 낮에 비해 엄청 더 추워진다.
그래서 우린 중앙시장에서 산 과일을 들고 집으로 왔는데,
회사에서 연말 파티를 한다는 제냐가 가고 제냐의 친구 슬라와(영광이란 뜻이라고 하더라) 저녁 식사에 디저트 + 맥주까지 함께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한국에서 알바를 한 경험도 2년이나 있는데, 한국어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 저녁 테이블에서는 러시아어+한국어+영어가 난무했고,
손짓 발짓 폰짓으로 길고 긴 시간을 함께했다.

러시아에서는 부리야트라는 지역이 있는데 이 지역의 사람들은 몽골계 사람들로 아시아 사람들과 굉장히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제냐와 슬라와 역시 부리야트 사람들로 우리와 굉장히 비슷한 외모에 개인적으로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오늘은 이루크츠크에서 가깝고 바이칼 호수 인근의 마을인 리스트비앙카를 가기 위해 일찍 움직였다.
(UK은 더 일찍 일어나 아침 스파게티를 해주었다.)


제냐 집에서는 버스터미널이 더 가까워 그 곳에서 리스트비앙카 가는 티켓을 끊어 버스를 탔다. (다른 블로그에서 보니 버스터미널 말고 중앙시장에서도 탈 수 있다고 하더라.)

티켓은 영수증처럼 생겼고, 리스트비앙카 가는 버스는 9번으로 시간이 정해져있는데, 거의 삼십분에 한 대씩은 있었고, 큰 버스와 작은 버스의 요금은 조금 달랐지만 크게 차이 나진 않았다. 500원도 채 안났던 것 같다. 하지만 타려는 시간 보다 적어도 20분은 일찍 가길 권한다. 표를 끊는데 시간이 엄청 소요된다.


버스로 1시간 조금 넘어 도착했을 땐 바람이 엄청 불어 기온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그리고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여 사진이 이쁘게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정말 멋지더라.
리스트비앙카에서 바라보는 바이칼은 호수다. 바다가 아니라 호수.
정말 큰 호수 건너에 보이는 눈덮인 산은 정말 볼만했다.


이 마을도 정말 작아서 구경이 금새 끝난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쯤엔 식당과 오물을 파는 시장이 함께 있는데, 횡단열차에서 만났던 이리나가 추천한 핫 오물을 먹기위해 들어갔다.
우리는 이미 찬 오물을 먹어봤던 사람들이라 핫 오물은 얼마나 짜울까 하는 걱정이 컸다.


밖의 시장같은 곳에 각종 오물이 많지만 우리는 사갈 수 없기에 일단 식당으로 들어가 음식을 시키고 핫 오물을 여기서 먹을 수 있냐고 물어 구매를 했다.

이르쿠츠크에 오면, 꼭 리스트비안카를 가고
리스트비안카에 오면, 꼭 핫 오물을 먹어야 한다.

핫 오물, 최고다.
안동 간고등어의 짠 맛을 빼고 훈제 향을 더 입혔다.
또 먹고 싶다.


핫 오물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르쿠츠크로 오는 버스를 타 중앙시장에서 내렸다.
(이 때도 큰 버스가 아닌 작은 버스를 탔는데 요금은 조금 더 나가지만 운이 좋게도 시간이 딱딱 맞았다.)
130번 거리를 가기 위해 내려 걸어오는데 Krestovozdvizhenskaya Tserkov'라는 교회를 마주했다. 
확실히 성당과 교회의 분위기는 달랐지만 카잔성당과는 달리 높은 언덕 위에 있는 교회는 주변의 많은 나무들과 눈으로 둘러쌓여 또 다른 분위기를 띄었다.


130번 거리에는 바르라는 이르쿠츠크 심볼을 시작으로 백화점까지 이쁜 매장들이 이어져 있는데 백화점 1, 2층을 기준으로 길이 나눠져 있어 거닐기에 좋았다.

(+바르라는 동물은 반은 사자 반은 비버의 몸을 하고 쪽제비를 입에 물고 있는데 크고 단단한 손톱에 비해 꽤나 귀여웠다.)


곳곳에 숨어 있는 야 라블류 이르쿠츠크 조형물. (사실 숨어 있진 않다. 그런데 러시아를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 이런 조형물이 있어, 나중에는 반갑다.)




해가 떨어져 또 집으로 들어 온 우리.
저녁으로 뭘 먹지 하고 있는데 퇴근한 제냐가 우리에게 포싀라는 만두를 쪄 줬다.
러시아에서 많이 먹는다던 펠메니보다 난 이게 훨~씬 맛있었다.
특히 마요네즈와 간장을 함께 찍어 먹으니 꿀 맛//




이르쿠츠크의 마지막 날이다.
이르쿠츠크가 작은 마을인 것에 비해 5일인 꽤나 긴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돌아다니기로 했다.
우연찮게 지나는 넓은 길에 누워도 보고, 넓은 광장과 다리도 건너 보고.


그리고 현지 식당에 가고 싶어 중앙시장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갔다.
샤슬릭과 샐러드, 그리고 만두 같은 것과 치킨 볶음밥을 먹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의 멋진 식사를 했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이거니와 샤슬릭과 만두는 또 시켜 먹고 싶은 욕구가 넘쳤었다. 그리고 현지분들은 차를 꼭 시켜먹더라.

이르쿠츠크의 마지막 식사를 뒤로 하고 집으로 와 짐을 싸고, 제냐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지내는 동안은 여유로운 시간들이여서 길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또 이동하려니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두번째 카우치서핑이어서 그런지 첫번째 보다는 나도 요령(?)이 조금 생겼고(낯이 두꺼워졌다는게 더 옳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호스트와도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즐거운 동거와 낭만있는 횡단열차를 다시 하려니 마냥 기분이 좋다. :)

댓글 1개:

  1. 역시 한국인은 한국어가....
    성당도 너무 이쁘고 눈도 이터널션샤인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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