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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일 수요일

[Travel-post] 4박 5일간의 횡단열차 2 = 모스크바 (D+15)


자, 두번째 횡단열차다. 원랜 3박 4일이 되어야 맞겠지만 우린 밤 늦게 타서 새벽에 내리는 표를 끊어 4박 5일이 되었다.(아무리 카우치서핑을 한다지만 하루라도 덜 신세지려 이 방법을 택했다..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시간 계산을 잘못한 내 탓이 크다.)


사람은 역시 직접 겪어봐야 배울 수 있다.
첫번째 횡단열차에서의 식사는 레벨 1이였다면 두번째는 레벨 4까지는 올라간 느낌이다.
스프와 빵에 치즈, 살라미만 있으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
게다가 각종 과일과(배, 귤, 바나나가 싸고 맛나다.) 1일 1라면으로 지루하지 않은 식단을 만들어 먹었는데, 우린 내릴때도 더 있고 싶단 대화를 나눴다.



이번 기차칸에서도 좋은 아저씨를 만났다. (먹을꺼 주셨다고 그러는 거 아니다.)
굉장히 조용하지만 친절한 아저씨.

역무원이 우리에서 설명을 해주면 표정과 손짓으로 설명을 해주시곤 쿨하게 아무것도 안 한 척. 둘 다 윗자리인 우리에게 자기 옆에 앉으라 손짓하시곤 또 쿨하게 아무것도 안 한 척.

그러던 아저씨가 식사를 하시다 우리에게 이것저것 건네 먹어보라 하신다.
또띠아 같은데 안은 소고기로 가득 찼다. 별다른 간 없이 담백한 식사와 러시아에서 제일 맛있었던 빵 '기엌'(이렇게 말해주셨는데 맞는 지 모르겠다, 가는 마트마다 찾아다녔지만 없더라.) 초코와 캬라멜이 엄청 응축(?)되 있는 듯한 간식까지.

너무 감사했지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한국에서 조금 가져온 커피스틱뿐이었고, 아저씨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는게 너무 아쉽다.



UK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첫 차에선 작은 소녀 키에라, 두번째 차에선 장난꾸러기 소년 발르.
셋이 땀이 송글송글 맺힐때까지 놀다가 사진찍기 놀이를 엄청하고 쉴 수 있었다.

이번 열차에선 둘 다 2층이었는데, 발르는 2층까지 올라와 함께하고 싶어해했고 발르의 할머니는 손자가 UK을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셨었다.
아이들과 잘 노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사실 나는 아이들을 무서워 한다. 아니, 겁이 난다는게 맞는 것 같다. 작고 약한 아이들이 다치거나 아플까봐 너무 무섭다.)


오// 러시아는 꿀이 유명하단다. 앞 열차에서 알게 된 한국인분들에게 듣고 마트에서 저렴한 녀석들 중 하나를 사서 열차에 탔는데, 추운 계절에 여행을 한터라 간간히 챙겨먹는 꿀이 약 같았다. 

(많은 블로그들에 러시아에서 제대로 된 꿀을 사기위한 매장을 소개해주신다. 그래서 우린 그 매장에 가서 여러가지 꿀을 맛만 보고 나왔다. 장기여행자인 우리에겐 그 조차 비싼 금액. 그래서 매장에서 싸고 맛있어 보이는 꿀을 샀는데, 이 치즈같은 색의 꿀이 엄청 부드럽고 맛있었다. 물에 타지 않고 그냥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정도로.)







횡단열차에서 보는 바깥은 하루종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계속 놀라고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열차에서는 우리같은 여행자보다 현지분들이 더 많으셨는데 다들 우리보다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셔서 우리 주변 자리의 다양한 탑승자를 구경할 수 있다. 한 침대 건너 탄 할머니와 손자, 혼자타신 아저씨, 다들 흩어진 자리에 앉은 식사시간에 모여앉는 가족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가족도, 친구들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게 된다.


그 많은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꼭 있는 것 같다.
이번 열차에서 잣을 준 어머니였다.
잣을 직접 수확해서 가공하는 일을 하시는 분인 것 같았는데, 그 과정을 찎은 동영상을 보여주시며 우리에게 잣을 한움큼 주신다. (우리 옆에 있던 할머니께서 러시아는 잣이 좋다 하시자 바로 꺼내주셨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 후엔 뜨게질로 인형을 짜고 계셨는데, 인형이 너무나 멋지고 이뻐 연신 '그라시브이'와 '하라쇼'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보였다. 그러니 또 엄마 미소를 띄어주신다.

사실 이 어머니와는 대화가 오고가거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진 않았었다.
그런데 사람에겐 느낌이라는게 있지 않은가.
이 어머니는 정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얼굴에서 부터 인자함이 느껴졌고, 우리보다 더 먼저 내리셔서 마중을 나갔는데 왠지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한마디와 볼뽀뽀를 해주고 가셨다. 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잊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여행한지 몇일 되지 않아 만난 귀인이였다.
(너무 좋음을 글로 다 하려니 장황하게 글만 길어져 안타깝다.)


역시나 긴 기차여행 중엔 오래 정차하는 역에서 내려 몸을 조금 풀어줘야 한다.
그런데 왜인지 날씨가 풀리는 것 같아 나중엔 반팔 차림으로 내려 몇 걸음 걷다 타길 반복했다.


하루에 한끼는 라면, 역시 라면은 아무리 먹어도 먹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빅본보다 도시락빠.
처음엔 엄청 짜워했던 도시락이었는데 물 좀 많이 붓고 계속 먹으니 도시락이 제일 맛있더라.


UK이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동안 나도 여러 작업을 해본다.
손톱에 네일스티커도 붙여보고(곧 새해니까.) 첫 열차에서 이리나에게 배운 러시아를 보고 있으니 어떤 잘생긴 애기꼬마가 와서 먹을 것도 준더라.

+ 애들이 먹는 간식인 것 같은데 안에 연유같은게 들어있는 부드러운 빵이었다. 엄청 맛있다.


노트북 작업이 끝나고 내가 읽던 책을 읽는 UK을 엄청 카리스마 있게 찍어주기도 했다.



이 애기꼬마가 바로 맛난 곰돌이 빵의 주인.
내가 고마워 얼굴 스티커를 줬는데, 콧구멍에 넣곤 당황하더라는.



2017년 마지막 밤이다.
그냥 열차에 탄 모든 사람들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하늘과 가까울때는 밝기만 한 줄 알았는데, 땅과 가까워지면 여러 색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같은 시간인데 한쪽은 이렇게 붉은 계열이고 다른 한쪽은 주황색에 하늘색이 섞여 있어 열차를 가운데 두고 다른 세상같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내릴 바로 앞 정차지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리고 어떤 모자가 탔다.
어머니는 우리와 같은 칸이고 아들은 옆옆.

어머니는 큰 해바라기씨 봉지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해바라기씨를 주시며 먹으라 하신다.
2017년 마지막 밤에도 우린 이렇게 선물 가득이다.

(러시아에서는 볶은 해바라기씨를 많이 먹는 것 같다. 볶아서 그런지 까먹기도 수월하고 고소한게 재밌고 맛있다.)



2017년의 마지막 밤을 열차에서 자고 나니 2018년의 새벽이 왔다.
1월 1일에 도착한 모스크바는 이르쿠츠크 보단 따뜻했다.


댓글 1개:

  1.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언니오빠. ㅋㅋㅋ
    너무 아름답고 행복해보여서 넘 보기 좋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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